천안문항쟁 지지시위
Memorials for the Tiananmen Square protests
1989년 중국 베이징 천안문 앞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중국 정부가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무차별적으로 진압한 6.4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였다. 홍콩 반환이 결정된 이후 유혈 사태로 마무리 된 천안문 사태는 반환 이후의 홍콩의 미래에 대한 우려 및 홍콩인들에게 중국을 타자로 설정하게 된 기폭제가 되었다. 홍콩인들은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를 탱크로 짓밟은 중국 정부의 야만을 보았고, 중국으로의 회귀는 홍콩인들에게는 두려운 공포가 되었다.
즉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홍콩인들은 중국으로의 회귀를 따뜻한 조국의 품으로 안기는 것이 아닌 두려운 식민 통치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홍콩인들은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강한 의심과 불안으로 홍콩을 떠나갔는데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의 엘리트들이었다.
한편으로 천안문 사태는 홍콩인들로 하여금 정치 의식과 정치 참여를 고양시켰다. 천안문 사태의 상징적 중요성은 홍콩 정치에 있어 민주적 논의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89년 당시 100만 명이 넘는 홍콩인들은 매주 일요일 빅토리아 공원에 운집하여 베이징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다.
현재 홍콩은 중국 내에서 유일하게 천안문 사태의 추모집회가 열리는 곳이다. 홍콩 시내 곳곳에 천안문 사태 당시 파괴되었던 민주주의의 여신상이 설치된 것도 대표적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천안문 사태 이후 홍콩 사회 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자 홍콩 기본법 23조에 국가 전복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들을 첨가하여 반환 이후 홍콩이 중국 정부에 대항하는 기지가 되지 않기 위해 대응하였으나 천안문 사태 추모집회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