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혁명
Umbrella Movement
2014 우산혁명은 2017년에 예정된 홍콩 행정수반 선거의 후보자 추천 방식에 대한 갈등으로 시발되었다. 홍콩의 행정수반은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민주진영과 홍콩인들의 끊임없는 직접 선거에 대한 요구로 중국 정부는 2017년 홍콩 행정수반 선출 방식을 기존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전환한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홍콩 행정수반 선거는 친중국 성향인 1200여명의 추천위원회 위원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는 애국인사 2~3명의 후보자 중에서 홍콩인이 투표로 행정수반을 선출하고 선출된 후보자는 중국 정부의 임명을 받아야 한다는 일명 8.31결정을 내렸다. 이에 홍콩인들은 8.31결정은 진정한 직선제가 아닌 중국의 통제와 간섭에 놓인 제한적 후보 추천 방식이며 기존의 제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홍콩의 학생들은 완전한 민주 직선제와 보통 선거를 요구하며 동맹휴업을 실시하는데 이것이 시위의 시작이었다. 홍콩 정부는 강경 대응 방침을 내세웠고 경찰은 진압봉을 들고 시위대에 최루탄을 쐈다. 시위대는 이를 피하려 우산을 들고 시위현장에 나갔는데 외신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시위를 우산혁명이라 지칭하였다.
2014 우산혁명에서는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하였던 홍콩의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홍콩의 정치 세력으로 떠올랐으며, 이후 민주화 시위의 주축이 되는 계기였다. 대표적으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이끌었던 주체는 17살의 조슈아 웡이 이끄는 홍콩의 중고생 학생단체인 학민사조, 홍콩의 대학생 연합 조직인 홍콩전상학생연회, 홍콩학생연맹, 홍콩 시민 단체 '센트럴을 점령하자'와 조직화되지 않은 20대 초반의 홍콩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비폭력 불복종으로 지배 질서인 중국 정부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이들이 택한 구체적인 방법은 동맹 휴업, 홍콩의 심장부를 의미하는 상징적 공간인 센트럴을 점령하는 저항 운동이었다.
우산혁명의 상징은 '노란리본', '우산'이었다. '노란 리본'은 오랫동안 이어진 국제적인 참정권 운동의 상징으로, 홍콩 민주화 시위에도 진정한 보통 선거를 원하는 홍콩인들의 상징적 열망으로 표상되었다. '우산'은 공권력의 물대포와 최루탄에 맞서 홍콩인들이 시위 현장에 우산을 들고 나간 것에서 이후 홍콩 민주화 시위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반면 이에 맞서는 친중 시위대도 나타났는데 이들은 파란 리본, 파란 옷을 입고 홍콩 정부의 모든 권력은 중앙 정부의 관할 아래 있으며 홍콩 정부의 모든 권력은 중앙 정부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중국 정부는 홍콩의 우산혁명에 대한 보도를 엄격히 통제하였으며, 홍콩의 이러한 민주화 시위가 국가 분열을 일으키고자 하는 외부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규정하였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홍콩의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였을 경우 대만과의 통일 및 티베트와 위구르 등 소수민족 자치구의 독립 요구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는 중국 본토의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극도의 우려와 경계로 상황에 대응하였다.
우산혁명은 75일만에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이 시위를 주목하였던 대만 사회에 영향을 끼쳐 대만의 지방선거에서 친중 노선의 국민당이 참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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