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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밍

Martin Lee

​홍콩 민주당 창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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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민주주의의 아버지​​

 리추밍은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 법학원 유학에서부터 기본법 위원, 변호사 협회장, 국회의원으로 이어지는 최정예 코스를 밟은 엘리트이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영국과 중국이 홍콩 반환 논의를 시작한 1980년이다. 불과 42세에 불과한 그는 홍콩변호사협회장 자격으로 영국, 중국간 홍콩 반환 논의에 참여하게 되었고, 47세에는 헌법에 해당되는 홍콩 기본법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법조 엘리트로 성공의 길을 걷던 리추밍은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반환점을 맞이한다. 1989년 5월 천안문 사태에서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 홍콩 내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중국 입국을 금지당했을 뿐만 아니라 홍콩 기본법 위원의 자리도 박탈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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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는 1990년에 홍콩 민주당을 창당하며 정치권에 복귀하였다. 당시 홍콩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친중 보수당이 압도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데 리추밍이 창당한 민주당은 홍콩 최초의 반중 친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이었다. 홍콩 민주당은 예상과 다르게 1991년 18개 직선 의석 중 12개를 휩쓸며 압승을 거두었다.

 2008년 23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을 마치고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현재 사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워싱턴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워싱턴 포스트의 기고란에 "범죄인 인도법은 미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을 베이징의 잠재적 인질"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재야에서 중국 정부를 향한 여론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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