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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독이 든 분유로 고통당하기 때문에 분유 사재기를 용인했어.

너희들에게 자유가 없기 때문에 당신들이 홍콩에 자유롭게 올 수 있도록 초대했어.

너희들의 교육이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교육 자원을 당신들과 나누었어.

너희들이 정자체를 모르니 아래쪽에 병신체를 써넣어줬어.

홍콩에 오면 현지 문화를 존중해주길 바라. 

이러다가 홍콩은 거덜난다니까.

홍콩의 어느 한 광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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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광고는 홍콩의 자원들을 끊임없이 침탈하고 있는 본토인을 '언제까지 참아주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며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홍콩의 자원들을 갉아먹고 뺏어가는 메뚜기로로 본토인을 공식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동시에 큰 우려를 야기하였다. 이처럼 일반 홍콩인들은, 반환 전에 비해 경제적/사회적으로 열악해진 자신의 상황에 대한 울분을 본토인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고 있다.

 일반 홍콩의 눈으로 보면 본토 여행객들의 대량구매는 홍콩인의 상품 공급 부족 현상을 낳고, 내지의 자유여행객들이 지나치게 많으면 홍콩은 더욱 비좁아진다. 아이가 홍콩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 내지의 임산부들이 연달아 홍콩으로 와서 아이를 낳음으로 인해 홍콩의 복지자원을 빼앗아간다. 

본토인을 공식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동시에 큰 우려를 야기하였다. 이처럼 일반 홍콩인들은, 반환 전에 비해 경제적/사회적으로 열악해진 자신의 상황에 대한 울분을 본토인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고 있다.

 일반 홍콩의 눈으로 보면 본토 여행객들의 대량구매는 홍콩인의 상품 공급 부족 현상을 낳고, 본토의 자유여행객들이 지나치게 많으면 홍콩은 더욱 비좁아진다. 아이가 홍콩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 본토의 임산부들이 연달아 홍콩으로 와서 아이를 낳음으로 인해 홍콩의 복지자원을 빼앗아간다. 

 본토인을 메뚜기로 칭하는 방식이 확대되는 것은 홍콩에서 중국계 이민자들이 복지를 누리는 것에 맞춰져 있다. 1970년대에 홍콩 경제는 전에 없는 성장을 경험했고, 권역적 국제화 도시가 되었다. 냉전 전의 홍콩인이 본토로 공부를 하러 갔던 것과 달리, 1970년대의 새로운 홍콩인 세대는 현지의 식민 체계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본토와는 점차 소원해졌다. 영국이 홍콩을 통치한 156년 동안 홍콩사회는 1970년대부터 점차 모종의 홍콩인 신분 정체성을 형성했다. 대륙의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홍콩 좌익 사회운동이 퇴조기에 접어들면서, 식민현대성 속에서 성장한 홍콩의 주류적 신분 정체성은 본토인에 대한 타자화와 맞물리면서 형성되었다. 본토의 ‘타자’ 이미지는 홍콩사회에서 과범위하게 수용되었는데 이는 중국 본토에 대한 홍콩 신분의 우월감을 반영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현재 본토인은 홍콩을 해치기 때문에 반드시 축출되어야 하는 타자로 변하였다. 타자의 이미지도 인간에서 메뚜기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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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에서의 정치적 불만은 보통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귀결된다. 최근 20년 동안 홍콩의 1인당 GDP는 7천 USD에서 3만 8천 USD로 증가했지만, 홍콩은 전 세계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지역이 되기도 했다. 1996년 홍콩의 지니계수는 0.518에 달했고, 2001년에는 0.525, 2011년에는 0.537로 상승해서 1971년 이래 최고치에 달했다. 또한 핵심 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거물 몇 명이 홍콩 경제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 가장 부유한 10%가 77.5%의 부를 점유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보다 높으며 영국과 일본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는 홍콩 젊은 세대들이 극심한 취업난, 급등하는 집값, 부와 가난의 대물림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민주화 시위에 결집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홍콩에서 절반에 달하는 인구의 월소득은 홍콩달러로 1만 3천에 못 미치는데, 이 중 13%는 5천에도 못미친다. 가장 빈곤한 30%가 홍콩 자산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4%에 불과하다. 2013년에 20%에 가까운 인구가 공식적으로 빈곤인구로 분류되었고, 사회복지를 추가한다고 해도 이 비율은 15%나 된다. 1인당 실질소득 정체, 취업 불안정성의 증가, 사회 양극화의 가속화 측면에서 보면, 홍콩 경제는 2005년부터 줄곧 악화되어왔다.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의 경우 대졸자를 제외하면 상층이동 기회가 모두 감소하였지만 대졸 학력자는 1970~80년대에 출생한 인구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80년 이후 출생한 청년들 가운데 대학교육을 받은 대졸자도 갈수록 높아지는 실업률을 맞닥뜨린 상황이며, 관리형 및 전문직 일자리가 예전에 비해 적어진 상황이다. 또한 연간 소득은 홍콩의 인플레이션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인데 집세 상승 속도는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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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인 홍콩의 주택가격은 기록적인 저금리와 급속한 경제 성장, 중국인 구매자들의 수요 급증에 힘입어 2배로 상승하였다. 홍콩의 평균 집값은 연평균 근로자 소득의 14.9배에 달해 홍콩의 주택 구매력이 세계에서 가장 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환 이후 악화된 경제 상황은 홍콩인들의 불만의 목소리와 위기의식을 높이게 하였다. 이 불만의 화살은 반환 이후 증가되어 유입되는 중국인들에게 향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공중 질서를 지키지 않는 중국인을 가리켜 ‘중국인스럽다’는 표현이 나왔고 홍콩인은 중국이 홍콩의 자원을 빼앗고 사회 통제까지 시도해 경제적 혜택과 정치적 자유를 잃고 있다며 극심한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홍콩의 집값은 중국의 부유층의 홍콩의 부동산 대거 투자로 치솟았다. 이것은 전반적인 홍콩의 물가 상상의 요인이 되었고 본토의 중국인들은 홍콩인들에게 '우리'의 것을 앗아가는 타자로 부각되었다. 홍콩인들은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여 집단의 불만을 정의하고 있으며, 적대적 정체성들을 구성하여 가고 있다. 홍콩인들은 문제의 책임이 있다고 인식되는 본토의 중국인에 대한 대립과 갈등의 정서가 공유하며 적대적 정체성을 강화시켜가고 있다.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홍콩이 점차 쇠락하고 특히 중국반환과 함께 온 금융위기로 생활수준이 하락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분노를 본토인을 대상으로 표출하게 되었다. 홍콩의 기층 일자리를 광범하게 차지하게 된 본토인에 대해 중하층 홍콩인의 원망이 생겨났고, 홍콩의 자원이 제한되어있다는 데 대한 인식이 강해지면서, 제한된 자원을 점유하는 이들로서 본토인(본토 관광객과 본토 임산부까지)을 대상으로 한 분노는 크게 확산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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